업무사례
합의였다는 주장이 무너진 자리, 가해자 징역 7년
피고인이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한 사건에서,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으로서 그 논리를 항목별로 반박하여 중형을 이끌어낸 사례입니다.
Ⅰ. 사건의 개요
선고는 징역 7년이었습니다. 여기에 아동·청소년 관련기관과 장애인 관련기관에 대한 각 3년의 취업제한, 형 집행 종료 후 5년의 보호관찰,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가 함께 명해졌습니다.
이 사건에서 의뢰인은 피해자였습니다.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에서 만나 교제를 시작한 상대로부터 여러 차례 성적 침해를 당하였고, 그 과정이 촬영되어 메신저 채널에 유포되었으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의 제작과 배포까지 함께 문제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피고인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한 문장을 꺼냈습니다. 두 사람은 그러한 관계를 전제로 만나 온 사이였고 모든 행위는 서로 합의한 것이었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중형은커녕 단 한 달의 실형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Ⅱ. 사건 쟁점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는 원칙적으로 증인의 지위에 섭니다. 공소를 제기하고 재판을 이끄는 것은 검사인데, 검사는 국가의 대리인이지 피해자 개인의 대리인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다시 정리하고 피해자에게 유리한 자료와 논리를 따로 재판부에 전달하는 일은 피해자 측 대리인의 몫입니다.
이 사건은 그 필요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유형이었습니다. 적용된 죄명의 법정형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강간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촬영물의 반포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제작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그러나 법정형이 아무리 높아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고인이 합의된 행위였다는 틀을 관철시키면 혐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고인은 세 갈래로 나누어 전면 부인했고, 하나라도 받아들여지면 해당 혐의가 무너지는 구조였습니다. 대리인이 할 일은 그 세 갈래를 모두 막는 것이었습니다.
Ⅲ. 강창효 변호사의 조력
변호인은 엄벌탄원 의견서를 통해 피고인이 내세운 주장의 허점을 하나씩 짚어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1) 서로 합의한 관계였다는 주장
그러한 관계를 전제로 만난 사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되지 않으려면 상대의 양해가 앞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양해가 있었다고 보려면 원하지 않는 순간에 행위를 즉시 멈추게 할 수단이 미리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전 약속을 흔히 세이프워드라고 부릅니다. 특정한 말이 나오면 그 즉시 모든 행위를 중단하기로 정해 두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는 그러한 약속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부의 의사를 표시할 방법 자체가 두 사람 사이에 정해진 바 없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아프다고 말하면 그만두었다고 진술했으나, 촬영된 자료에는 피해자가 분명히 거부의 뜻을 밝히고 있음에도 행위가 이어지는 장면이 남아 있었습니다.
또한 문제된 네 건은 모두 별다른 합의 없이 갑자기 시작되었고, 피고인 스스로도 각 범행 당시 피해자가 화가 난 상태였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인정했습니다. 변호인은 이 모순을 부각했습니다. 화가 난 상대에게 사전 합의도 없이 시작된 행위를 두고 합의된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재판부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한 관계라는 명목으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침해를 묵인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 그런 일이 없었고 피해자가 공황 상태였을 뿐이라는 주장
피고인은 유사강간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피해자가 공황 상태에 빠져 집 밖으로 나간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을 무너뜨린 것은 건물의 폐쇄회로 영상이었습니다.
영상에는 피해자가 옷차림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급히 집을 빠져나와 계단으로 한 층을 올라간 뒤 건물 구석에 몸을 숨기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휴대전화도 지갑도 신발도 없이 나온 상태였습니다. 공황 때문에 집을 나섰다면 밖의 트인 곳으로 나가 진정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오히려 건물 안쪽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도망쳐 몸을 감추는 사람의 행동이었습니다.
몇 분 뒤 피고인이 나와 피해자를 찾아다녔고, 숨어 있던 피해자를 발견해 달랜 뒤 다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장면도 이어졌습니다. 변호인은 이 정황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제출했고, 재판부 역시 피해자가 강제적인 행위에 놀라 도망쳐 나온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3) 촬영과 유포에 모두 동의했다는 주장
피고인은 촬영물이 전부 피해자의 동의 아래 만들어졌고 메신저 채널에 올린 사실도 피해자가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교제 초기에 혼자만 보겠다는 말을 듣고 일부 촬영에 응했을 뿐이며, 성적 침해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의 촬영에는 동의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나아가 촬영된 자료 가운데 일부에서는 피고인이 촬영에 응하면 헤어져 주겠다는 취지로 말하며 이별을 조건으로 촬영을 요구한 정황까지 확인되었습니다.
피고인의 주장은 결국 행위 자체를 거부하던 사람이 그 장면의 촬영에는 동의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변호인은 이러한 사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출했고, 재판부는 촬영과 유포 모두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Ⅳ. 결과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양형의 이유에서는 피고인이 연인 관계였던 피해자에 대하여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피해자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이용하였고, 피해자의 인격을 무너뜨려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악화시킨 점을 불리한 정상으로 들었습니다. 아울러 모든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진지한 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거슬러 보면 이 판결은 피고인의 세 가지 주장이 차례로 무너진 결과입니다. 합의였다는 주장은 중단시킬 수단이 없었다는 사실 앞에서, 그런 일이 없었다는 주장은 영상에 남은 동선 앞에서, 동의했다는 주장은 촬영을 요구한 정황 앞에서 각각 힘을 잃었습니다.
피해자의 진술을 보강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해 정황을 정리하며, 상대의 방어 논리를 법리로 반박하는 일. 이것이 피해자 대리인의 역할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정교한 설명을 준비하더라도 그 설명이 사실과 어긋나는 지점은 남기 마련이며, 그 지점을 찾아 제시하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